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桑村 先生 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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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26 22:53 조회3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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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桑村 先生 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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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年(충정왕 3년)
상촌선생은 通禮門副使 부친 諱와 어머니 一直 孫氏 사이에 2男4女 중 막내로 태어나심.
字는 去광(거광) 號는 桑村.

1370年(공민왕 19년, 20歲)
生員試에 합격, 成均館에 입학하여, 이색, 정몽주, 박상충 선생과 함께 性理學에 몰두하심.

1371年
모친이 돌아가시자 안동에서 廬墓살이 3年의 禮를 다 하시니, 王은 旌閭를 내리고, 畵工에게 命하여 公의 廬墓生活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東國三綱行實錄에 記錄하여 孝의 標本으로 삼음.

1374年(공민왕 23년, 24歲)
文科에 壯元으로 及第하시고, 德寧府主簿를 除授받으심. 이때 字를 純仲이라 함.

1375年(禑王 元年, 25세)
正言으로 王을 보필함. 이때 曺敏修의 戰功에 對한 敎書를 짓도록 하였으나 이를 사양하자 禑王이 全羅道 突山戍(돌산수)로 流配시킴.

1376年
流配에서 풀려 典校副令을 除授 받음.

1388年
忠淸道 都觀察使로 나가심.

1389年(恭讓王 元年)
成均 좨주에 오르심.

1390年(恭讓王 2年)
成均館 大司成에 제수되어 世子左輔德을 兼하심.
當面 政治改革改革案 5個조를 올려 어려운 時局에 기틀을 마련하심.

1392年(恭讓王 4年, 44세)
右常侍를 거쳐 左常侍에 올라 貪官汚吏와 조정의 肥大함을 上疏하자 王이 이를 수용하고, 그 功勞를 認定함. 4月에刑曹判書로 제수 됨.

7月에 高麗가 亡하자 杜門洞에 들어가심.
그 후 秋嶺에 있다가 後에 故鄕 安東으로 내려가심.
그 후 조선조의 부름(刑曹判書)에 끈질긴 회유를 받자 高麗에 對한 忠節로서 秋嶺에서 絶命詞를 읊조리시며 스스로 절명하심.

< 절명사> “平生 지킨 忠孝의 뜻, 오늘날 누가 알아 주리요?
한번의 죽음으로 나의 恨을 푸니 하늘은 마땅히 알아 주리.”


2004년 7월 13일
國史編纂委員會 編史硏究官 李迎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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